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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서 맥락의 죽음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성소수자 맥락의 죽음이라는 판결에 관한 세 개의 의견



초록(Abstract)


성소수자 운동에는 법과 제도가 성소수자 고유의 맥락을 충분히 품지 못한다는 어떤 인식이 존재한다. 이 인식을 승인할 수 있는가. 인식 자체를 승인하더라도 그에 이르는 과정은 엄밀한가. 혹은 법이 포섭할 수 없는 것을 포섭하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 드는 무익한 시도이면서 궁극적으로는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탐지한다. 성소수자 맥락의 죽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more on 퀴어인문잡지 삐라 2호 - 죽음



이 글은 법 앞에서 맞는 성소수자 맥락의 죽음이라는 당신과 나의 판결에 관한 몇 가지 의견을 담고 있다. 한 사례에서 성소수자의 맥락은 죽음을 맞이했으되 우리는 그 죽음의 실체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례에서 당신의 맥락은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확보하지 못하는 듯하다. 또 어떤 사례에서는 맥락이란 이름으로 논점 이탈이 일어난다. 나는 사법부 내에서 담론이 형성되는 나름의 형식을 빌려 이 ‘성소수자 맥락의 죽음’을 파헤치고자 한다. 이 담론의 이름은 법원의 공식적인 의견일 때는 ‘다수의견’, 다수의견의 결론에 동의하나 논거가 다를 때는 ‘보충의견’, 그리고 다수의견에 반대할 때는 ‘반대의견’이다. 내가 이 글에서 개진하는 내용은 공교롭게도 성소수자 맥락의 죽음이라는 판결문에서 이러한 이름을 하나씩 나누어 가진다."


"미합중국의 혼인평등 운동은 논리적 전략을 통해 반동성애 세력마저 성소수자 맥락의 특이성을 인정하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다양한 연구를 제시하여 입증한다. 이렇게 성소수자라는 점이 의미하는 바를 납득시킨 다음, 구체적인 요구 사안에서 이 권리가 필요한 이유를 논증한다. 이러한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 자신을 설명하는 학술적, 서사적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잘게 쪼개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인정할 수 있는 문장들의 연쇄를 만들어내야 한다. 특정한 요구 사항이 의제로 떠오른다면, 그 요구사항에 관하여 위의 작업을 반복한다. ‘인권’이라는 구호 한마디가 이 과정을 대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입증책임(burden of proof)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입증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 가족이 제도적으로 포섭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판인 가족구성권 운동 또한 두 가지 방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하나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의 의미에 관한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적 인정이 필요한 이유에 관한 설명이다. 이러한 증명을 들으리라 기대했던 두 번의 기회에서 우리는 혼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 주장이 호소하는 권위의 하교를 받을 뿐이다. 가족구성권이라는 제도 개선 논의의 장에서 우리는 제도에 관해 유의미한 단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비혼주의라는 전혀 새로운 가능성에 매료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들은 제도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할 것이다. 그러나 발제문들이 배반한 것은 후자의 사람들만이 아니다. 제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이론적 논증이 가족구성권 논의의 맥을 이토록 흐려놓아서는 안 되었다. 우리는 제도와 이론, 양쪽 모두에 이보다는 나은 대우를 해야 함에도, 적어도 두 번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들의 논의에 반대한다."




* 퀴어인문잡지 삐라 통권 2호 '죽음'에 실린 글입니다. 독자로서 1호를 흥미롭게 읽다 2호 필진 권유를 받았습니다만 덜컥 승낙할 때만 해도 이 글이 그렇게 제 머리를 빠지게 만드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요. 필진 권유를 받고 책이 나오기까지 장장 1년 가량 걸렸습니다. 서론과 개요는 가장 먼저 송부했지만 중간중간 바쁜 일과 슬럼프 때문에 완고는 가장 늦게 한... 가장 긴 글을 쓴... 그런 이상한 필진이 되었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정말 깁니다. 각주와 미주를 뺴고 본문만 45,000자짜리 글.


* 이 글에 때려넣은 내용으로는 사실 세 개 정도의 글을 쓰는 게 적절합니다. 한 부산 청소년이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으로 인하여 자살한 사건의 소송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혼인평등 운동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의 가족구성권 운동과 담론지형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법학의 견지에서 쓰는 척을 하였으나 제 관점은 (한국 성소수자 담론지형에서 과소대표된) 리버럴 동성애자의 그것에 가깝습니다.


* 원하는 대로 쓰도록 방목당하였고, 편집위 입장에서는 많은 인내와 기다림을 수반하는 시간을 허여 받았습니다. 그 점에 삐라 편집위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쓰면서는 막막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다시는 쓸 수 없을 글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스러운 글이란 뜻은 아닙니다만, 그래도요.


* 이 글의 전문은 퀴어인문잡지 삐라 2호를 구매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젼례에 따라 하드카피 재고가 소진되면 웹 아카이브에 편집본이 업로드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때 다시금 정보를 업데이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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